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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액션영화 스타일의 진화

by charterflight 2025. 3. 28.

액션영화의 주먹다짐

예전에는 ‘액션 영화’ 하면 미국 헐리우드 블록버스터가 먼저 떠올랐지만, 이제는 “한국 액션영화만의 스타일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시대가 됐습니다. 단순히 따라하기를 넘어서, 고유한 정서와 감각, 연출 방식까지 갖춘 ‘한국형 액션’은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진화하고 있습니다. 감정의 결이 살아 있고, 현실이 녹아 있으며, 장르의 경계를 넘나드는 한국 액션 영화의 흐름을 시대별로 짚어보겠습니다.

1. 80~90년대: 현실과 마초성의 이중주

한국 액션 영화의 시작은 ‘현실’에서 출발했습니다. 80년대 중후반부터 90년대 초반까지, 주로 조직 폭력배, 형사, 군인, 정치인 등을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들이 많았죠.
이 시기의 액션 영화들은 대부분 남성 중심 서사였고, ‘주먹’이 모든 것을 해결하는 세계를 그리고 있었습니다. <비트>, <홀리데이>, <유령>처럼 다소 투박하고 거칠었지만, 어딘가 ‘진짜 같은 느낌’이 있었던 작품들이 대표적입니다.
총보다 맨주먹, 전략보다 본능, 화려한 촬영기법보다 핸드헬드 스타일의 현장감—이게 당시 액션의 정체성이었죠. 캐릭터의 대사보다 표정과 몸짓으로 감정을 전달하는 경우가 많았고, 음악도 무겁고 절제된 톤이 주를 이뤘습니다.
특히 당시 영화에는 ‘남자의 의리’와 ‘비극적인 운명’이라는 두 축이 강하게 자리잡고 있었죠. 인물은 대체로 구원받지 못하고, 고독 속에서 총을 맞거나 감옥에 가는 엔딩이 많았습니다. 이 시기의 액션은 서툴렀지만 진심이 있었고, 어설펐지만 인상 깊었습니다.

2. 2000년대: 장르의 경계가 무너지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한국 액션 영화는 ‘양식’보다 ‘이야기’에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중심에는 <올드보이>, <달콤한 인생>, <아라한 장풍대작전> 같은 작품들이 있죠.
<올드보이>의 복도 장면은 많은 사람들이 회자하는 액션 명장면인데, 이 씬이 특별한 건 그 안에 담긴 ‘고통’과 ‘억눌린 감정’이었습니다. 단순히 멋있어서가 아니라, 주인공의 감정선이 액션을 통해 표현됐기 때문에 인상 깊었던 거죠.
이 시기 액션 영화의 특징은 ‘장르 혼합’입니다. 단순히 액션만 있는 게 아니라 드라마, 코미디, 스릴러, 심지어 판타지와도 결합됐습니다. <짝패>처럼 리얼하면서도 인간적인 이야기, <범죄의 재구성>처럼 장난기 있는 액션, <친절한 금자씨>처럼 스타일리시한 복수극 등, 액션의 형태가 다양해졌습니다.
연출 면에서도 확실한 변화가 있었죠. 카메라의 움직임이 더 유연해졌고, 편집이 리듬을 타기 시작했으며, 액션이 스토리와 분리된 것이 아니라 완전히 결합된 형태로 등장했습니다. 주인공이 왜 싸우는지, 싸움이 끝났을 때 무엇이 남는지가 중요한 포인트로 작용했습니다.

3. 2010년대: 감정, 메시지, 기술의 삼중주

2010년대 이후 한국 액션은 더 깊어졌습니다. 단순히 싸우는 장면만 보여주는 게 아니라, 그 싸움에 담긴 ‘이유’와 ‘감정’, 그리고 ‘사회적 의미’를 함께 담아내기 시작한 거죠.
<부산행>은 좀비 액션이지만 가족, 공동체, 이기심이라는 테마를 던졌고, <더 테러 라이브>는 액션보다는 심리전으로 극의 긴장감을 끌어올렸습니다. <공작>이나 <남산의 부장들> 같은 영화는 총 한 발 쏘지 않고도 엄청난 긴장감을 유지하면서, ‘숨죽인 액션’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보여주기도 했죠.
또한, 이 시기에는 기술적 진보도 뚜렷했습니다. 스턴트, 와이어, CG, 고속촬영 등 다양한 방식이 도입되면서 ‘한국형 액션’이 국제 무대에서도 경쟁력을 갖추게 됩니다.
무엇보다 이 시기의 액션은 관객의 ‘공감’을 중심에 둡니다. <베테랑>의 유쾌한 정의감, <범죄도시>의 화끈한 통쾌함, <모가디슈>의 실화 기반 감정선—all 현실과 맞닿아 있는 이야기를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싸움은 그 자체로도 인상 깊지만, 싸우는 이유에 이입하게 만들죠.

4. 2020년대 이후: OTT 시대, 세계와 연결되는 한국형 액션

최근 몇 년간, 넷플릭스와 같은 글로벌 OTT 플랫폼이 등장하면서 한국 액션영화는 또 한 번 변화를 겪고 있습니다. <D.P.>, <수리남>, <경이로운 소문>, <더 글로리> 등은 기존 영화적 문법과는 다른, 에피소드 중심의 이야기 구조 속에서 액션을 녹여내고 있죠.
OTT는 보다 세분화된 타깃을 노릴 수 있기 때문에, 장르 실험이 더 자유롭고, 영상미와 연출의 스펙트럼도 넓습니다. 덕분에 한국형 액션도 예전보다 훨씬 다양한 톤과 리듬을 담을 수 있게 됐습니다.
또한 해외 팬들도 함께 소비하는 시대인 만큼, 한국 정서와 글로벌 보편성을 함께 잡으려는 시도들이 많아졌죠. 격투는 한국식인데, 음악이나 편집은 오히려 서구 스타일인 작품들도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건 단점이라기보단, 세계와 연결된 새로운 정체성의 확장이기도 합니다.

결론: 한국 액션의 힘은 ‘감정’에 있다

한국 액션영화의 진화는 단순히 기술이나 규모에서 이뤄진 게 아닙니다. 가장 큰 차이는 ‘감정의 농도’입니다.
미국 액션이 스펙터클과 쿨함을 앞세운다면, 한국 액션은 싸움 속에서도 눈빛 하나, 숨소리 하나에 감정을 담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게 관객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죠.
앞으로 한국형 액션은 더 섬세해질 겁니다. 싸움은 줄어들 수 있지만, 감정은 더 짙어질 수도 있죠. 시대와 기술이 어떻게 변하든, ‘사람’에 집중하는 액션—그게 바로 한국형 액션영화가 가진 가장 큰 무기이자 매력입니다.